경복궁 왕세자의 공간, 동궁 권역입니다. <br /> <br />이곳에서 고종 5년, 1868년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화장실 유적이 발견됐습니다. <br /> <br />가로 10.4m에 너비 1.4m 깊이 1.8m의 큰 구덩이입니다. <br /> <br />바닥과 벽면은 돌과 진흙을 이용해 꼼꼼하게 방수를 했습니다. <br /> <br />회충, 편충 등 기생충 알이 대거 나왔고 가지, 들깨, 오이 씨앗과 각종 꽃가루, 소머리뼈가 출토됐습니다. <br /> <br />눈길을 끄는 점은 물을 이용해 미생물 발효를 유도하는 현대 정화조와 원리가 비슷하다는 겁니다. <br /> <br />바닥에서 50cm 위, 낮은 곳에 있는 입수구로는 악취 유발 없이 물이 계속 흘러들어올 수 있었습니다. <br /> <br />분변이 발효된 뒤 가라앉으면, 퇴비로 이용했습니다. <br /> <br />그 위에 고인 오수는 사람이 퍼냈고, 비가 많이 오더라도 높게 위치한 출수구로 빠져나갔습니다. <br /> <br />[오동선 /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: 이 입수구의 바닥면이 출수구보다 80cm 정도 가량 낮게 만든 것이 구조적으로 굉장히 효율성이 높다고 하는 부분, 물이 넘쳐 나갈 때 일부 정화된 물이 나간다는 점.] <br /> <br />실제 구덩이 밖에서는 기생충알이 나오지 않아 위생적 구조임이 확인됐습니다. <br /> <br />익산 왕궁리와 경주 등지에서도 화장실 유적이 나왔지만, 구체적인 정화 시스템이 확인된 것은 처음입니다. <br /> <br />[이장훈 / 한국생활악취연구소 소장 : (국내외 화장실 유적은) 다 물을 이용해서 버려지는 문화였습니다. 이렇게 버리지 않고 모아서 처리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은 여기가 처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.] <br /> <br />이 화장실은 한꺼번에 10명, 하루 150명 정도가 이용 가능했습니다. <br /> <br />임금 등 주요 인물은 매화틀 같은 이동식 변기를 이용해, 화장실은 궁녀와 군사 등 직원용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. <br /> <br />조선 궁궐은 중심 권역 위주로 발굴이 이뤄졌기 때문에 주변부에 있었던 화장실이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. <br /> <br />취재기자ㅣ이승은 <br />촬영기자ㅣ최용호 <br />그래픽ㅣ김경민 <br />자막뉴스ㅣ서미량<br /><br />▶ 기사 원문 : https://www.ytn.co.kr/_ln/0134_202107091140569421<br />▶ 제보 안내 : http://goo.gl/gEvsAL, 모바일앱, social@ytn.co.kr, #2424<br /><br />▣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: http://goo.gl/oXJWJs<br /><br />[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/ Korea News Channel YTN ]